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텍스트(text)를 보며 살아갑니다.
유튜브, 포털 사이트,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치는 광고 문구,
공지나 안내문, 메뉴판 등이 될 수도 있겠고
공부를 위해 펼친 교재나 업무 중 오가는 서류, 순전히 독서를 위해 집어든 책
누군가와 소소하게 주고받는 메시지도 되겠죠.
모든 형태의 단어, 글 文을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.
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고르기 위해 골똘히 들여다보는 메뉴판의
‘아메리카노’ 라는 글자에서는 음료를 지칭하는 것의 개념적 의미가 전부이겠지만
‘야 추운데 넌 뭐 마실래?’
‘알잖아 얼죽아 ㅋㅋ’
‘ㅇㅋ 시켜둘게’ 라는 짧은 대화에서
우리는 자연스럽게 ‘상대의 스타일 혹은 고집, 작은 소신’이라는
단어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
한 문장, 한 단어만 보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
전체적인 대화의 흐름을 속에서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합니다.
더 길고 복잡한 형태의 칼럼, 소설, 정보 전달의 글이건
함축적이고 은유적인 단순한 형태의 시이건
단순한 Text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
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 챕터와 챕터 사이
보이지 않지만 그 사이를 흐르고 있는 脈 인 Context 가 존재합니다.
인생에서 내가 겪는 수많은 상황들이 각각의 text이고
하나의 상황이 다음 상황의 원인이 되어 또 다른 상황이라는 과정이 펼쳐지고
그것이 한 권의 책이라는 삶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text라면
나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
각 상황들 드러난 사건들에 대한 파편적인 이해, 즉 내가 겪는 상황의 단편적 연속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
끝없이 이어지는 text 사이를 흐르고 있으나 드러나지 않는 context를 알아야 합니다.
관념분석적 표현으로는
표면으로 드러난 현실 상황 그리고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관념들의 전후 사정을
상대, 동시, 전체성의 시각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context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
그 이해가 상황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진정한 ‘허용’이 될 것입니다.
더 나아가 이 삶이라는 책을 쓴 작가의 숨은 의미와 의도까지 읽는 것이 context를 읽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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